2017년 7월 15일
땟국물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노천탕으로 들어갔다. 아침공기는 아직 차가운데 물은 따뜻하고 아직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수질이 매우 좋다. 원래 목욕탕에 가도 온탕에서 오래 버티는 편이 아닌데 시원한 바깥 공기와 따땃한 온천물이 나를 탕 바깥으로 못나가게 잡아 끈다. 이 온천의 수원지는 저기 멀리보이는 산 밑인데 이 곳까지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을 끌어오고, 바로 끌어온 물은 너무 뜨거워서 찬물을 섞어서 탕에 공급한다고 한다.
아침 일찍. 탕에 사람이 없다.
S군은 노천탕이라고 해서 대단할 줄 알았는데 무슨 동네 목욕탕 같다며 투덜거리며 밉상짓을 한다. 그마저도 본인은 감기에 컨디션이 안좋다며 온천욕은 하지도 않는다. 아이고 그놈 참 점점 미워지네.
나갈 때 쯤 되니 사람이 많아졌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온천욕을 하다 보니 바스카가 아침 먹으러 얼른 오라고 한다. 얼른 씻고 나가서 밥먹고 떠날 채비를 한다. 투어하는 열흘 동안 쌓였던 목욕에 대한 갈증을 하루만에 풀어낸 듯한 기분이다. 컨디션이 좋아졌다.
이동 중간에 오늘도 슈퍼를 들려 바스카는 우리가 먹을 음식 재료를 사고, 다른 친구들도 먹고 싶은 간식들을 산다. 우리는 국물이 땡길 순간을 대비해 도시락라면이랑 과일주스를 한통 샀다. S군은 고기를 덜 먹어서 감기가 안 떨어지는 것 같다고 양고기를 한 근 정도 샀다.
도시락!
여느 때 처럼 가는 길에 멈춰서서 점심을 해먹는다. 처음에는 눈에 안 띄었는데 엄청나게 큰 곤충이 여기저기 보인다. 메뚜기 비스므리 하기도 하고... 엄지 손가락 만한 놈이 천천히 기어 오는데, 지도 더운지 그늘이 있는 의자 밑이나 가방 쪽으로 계속 기어 온다.
"간바, 나 저거 싫은데 좀 치워줘요...."
"으으으, 나도 싫어. 니 좀 치워줘.."
덩치 커다란 몽골 아저씨가 나보다 더 무서워한다. 손으로 만지기는 싫어서 신고 있던 슬리퍼로 멀리 쳐내는데 그래도 다시 기어 온다.
"바스카, 나 저거 싫은데 좀 치워주면 안돼요?"
"쟤네들은 물지 않아. 그냥 놔둬도 돼."
쿨한 바스카는 신경도 안쓴다. 그래도 다리에 기어오르거나 하진 않아서 다행이다.
징그럽다
바스카가 점심 준비하는 동안 다들 무슨 이파리 같은 걸 뜯는다. 차 끓여 마시면 몸에 좋다고 그랬는데, 몽골판 이삭줍기 같다.
이삭 줍기?
오늘 오후는 Khorgo Uul 화산 트레킹을 짧게 하고 Terkhiin Tsagaan Nuur 호수 근처의 숙소에서 묵을 예정이라고 한다.
Khorgo Uul 화산은 짧은 트레킹으로 분화구까지 구경할 수 있었는데 분화구와 주변 땅의 색깔들이 마치 최근에 화산활동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사화산이 된지 만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걷는 길은 거의 대부분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계단이 아닌 곳은 돌들이 굴러가서 발목 삐기 딱 좋을 것 같았다.
내려가는 길의 탁 트인 풍경도 좋다.
화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Terkhiin Tsagaan Nuur 호수 (White Lake라고 부르더라)가 있고 호숫가 게르 숙소에서 묵는다. 여기 호숫가에도 현지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바스카가 여기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호수가로 가봤는데 드물게 수영하는 사람이 있긴하다. 하지만 물이 차기도 차고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데 샤워할 곳도 없어서 수영을 포기했다. 그냥 숙소 주변 호숫가를 산책하며 발을 물에 담궈 보기만 했다.
게르로 돌아오니 허르헉 준비를 위해 간바가 돌을 난로에 넣어서 굽고 있다. 허르헉은 양고기와 야채를 달궈진 돌과 같이 냄비에 넣어서 쪄내는 몽골 전통음식인데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본적이 있어서 요리하는 것도 보고 싶었고 먹어보고도 싶었다. 김장하는 날 돼지고기 수육하는 것 마냥 양도 넉넉하게 요리한다. 돌 굽고 고기 잘라서 던져넣고 등등 큰 액션은 간바가 다 하는 것 같은데, 자잘하게 불 조절하고 물부어주고 하는 것은 역시 바스카가 다 챙긴다. 무슨 아빠엄마 컨셉도 아닌데 옆에서 보면 재미있다.
간바의 맹활약
물 조절
불 조절
맛은 보이는 그대로 삶은 양고기다. 아주 제대로 삶은 양고기를 제대로 한번 날잡고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고기 덩어리를 물고 뜯으니 입안 구석구석이 양고기로 가득 찬다. 고기부페에서 엄청 구워먹고 나면 한동안 채식을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듯이, 허르헉을 제대로 먹고나니 이제 양고기는 한동안 안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보쌈김치나 묵은지, 없으면 치킨무라도 하나 먹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없어도 맛있게 잘 먹었다.
허르헉 완성! 돌은 먹으면 안된다.
제대로 한번 뜯어보자
배는 든든하고, 해질 무렵 하늘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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